“거기 그대로 있어.” 청룡은 어느새 상체를 앞으로 쭉 뺀 츠키시마를 보며 단호하게 말했다. 그는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이고 상황을 바로 이해하려 애썼다. 백호는 서쪽 땅의 수호신이다. 성미가 급하고 매우 호전적이며 불의를 참지 않기로 유명했다. 하얗게 센 머리카락에 제법 늙어 뵈는 모습일 줄 알았더니 정반대였다. 그는 물에 젖은 개가 털을 털어내듯 온 몸을...
찬란한 것은 모두 과거가 되었다. 청룡은 멀거니 눈 내리는 하늘을 쳐다보았다. 아득히 먼 옛날부터 시작된 눈보라였다. 그가 기억을 곱씹는 것을 멈추었던 순간부터 내리던 것이다. 손을 뻗으니 바닥에 내려앉자마자 녹는다. 그러나 그 위를 금세 새로운 눈발이 덮을 것이다. 새하얀 눈발 속 희미한 형체가 가까워졌다. 그는 자리를 고쳐앉고 다가오는 이를 향해 고개를...
「오늘 하늘 엄청 예쁘다!」 「구름이 엄청 많아.」 「완전 파랗고.」 전부 시답잖은 얘기뿐이었다. 츠키시마는 감흥 없는 얼굴로 채팅창 가득한 사진과 짤막한 문장을 계속 읽어내려갔다. 그의 연락은 들쭉날쭉하였다. 하루에도 몇 번씩 보내는가 하면 며칠 내내 잠잠할 때도 있었고 이 삼일 연속으로 올 때도 있었다. 답장은 내킬 때만 했다. 딱히 내킬 때가 많지 않...
“어, 카라스노다.” 우연이었다. 테루시마는 편의점에서 나오는 츠키시마를 쳐다보았다. 츠키시마는 문을 밀며 나오는 동시에 들리는 학교 이름에 고개를 돌렸다. 눈이 마주쳤다. “아는 애야?” 테루시마 주위의 학생들이 그에게 물었다. “키, 크다.” 학생 중 하나가 츠키시마를 올려다보며 얼핏 비아냥처럼 들리는 말을 내뱉었다. 저마다 머리카락 색이 요란했다. 츠...
새 학년이 되었다. 학교 수업이 끝나면 발걸음은 자연스레 부실로 향한다. 귀를 온통 틀어막은 헤드폰에선 몇 달 전 전주가 마음에 들어 집어넣었던 노래가 흘러나왔다. 듣자마자 꽂혀서 종일 그것만 듣다가 종내에 질려서 한동안 듣지 않았던 노래다. 오랜만에 들으니까 좋네. 시끄럽게 무리지어 사라지는 학생들의 말소리가 소음이 되어 노래 가사 속속히 들어찼다. 볼륨...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어.” 마족의 왕이 말했습니다. 웃긴 얼굴을 하고 있었어요. 왜 그렇게 웃고 있는지 묻고 싶었습니다. “저도요.” 제가 대답했죠. “아, 그게 아니잖아. 츳키 다시 다시.” 그는 손을 휘휘 젓고 저를 의뭉스럽게 보았습니다.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어.” 그의 얼굴이 삽시간에 진지해졌습니다. 저는 깊게 심사숙고한 뒤 답을 내리기로 했습니다...
결핍된 자들의 이야기 W. 썸머 1 콰직- 콰앙-! 들어 올려진 오래전 작동을 멈추었을 자동차 한 대가 벽 너머로 날아갔다. 수치 37 정도의 생각보다 무거운 자동차는 그대로 반정부군의 머리 위에 떨어졌고 당도한 죽음 앞에 내지르는 비명은 예상보다 시끄러웠다. “케이K, 작전 포인트 에이 다시 세븐A-7 클리어.” “생포는?” 인이어에서 들린 목소리는 차분...
“그럼” “나랑 만나요.” 너는 흐드러지게 웃었다. 너 우카이 케이신 X 츠키시마 케이 W. 썸머 “저기…” 너와의 거리는 체육관의 끝과 끝보다 멀었다. 그 안에 함께한다는 걸 종종 잊어버릴 정도로. 네가 처음으로 내게 다가온 날을 기억한다. 나보다 한 뼘은 커다란 네가 뱉은 거리감이 실로 아득해 나는 어깨를 떨었다. ‘압도적으로 강한 상대를 막을 방법이 ...
오후 7시 23분, 검푸른 바다 저 너머 불빛이 아주 작게 보였다. 물은 그다지 차갑지 않았지만 더위를 식히기엔 충분했다. 원하던 해변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근사했다. “이렇게 가만히 있어 봐.” 그는 파도의 끝이 닿는 모래사장에 앉아 나를 쳐다보며 웃었다. 그의 웃음 위로 검고 푸른 물결이, 습한 공기가, “몸에 힘을 빼면” “하하하, 봐 츳키. 재밌지?”...
“나는 당신의 슬픔을 듣고, 아픔을 보며, 당신을 껴안아 부디 하루의 위로가 되기를” 낮은 구름처럼 네가 말했다. 낮은 구름 쿠로오 테츠로 X 츠키시마 케이 W. 썸머 오늘은 7시 기상, 스케줄은 매번 바뀌었다. 사흘을 쉬고 다시 출근하기 위해 알람을 맞추면 보통 잠이 오지 않아 뜬눈으로 시간을 보낸다. “오늘은 일찍 나가?” 반쯤 뜬 눈으로 부엌에 어슬렁...
중간고사가 다가오면서 도자실에서 지내는 시간이 대폭 늘었다. 1학년 전공까지 같이 듣는 통에 해야 할 과제가 말 그대로 산더미처럼 불어났다. 더는 꼬박밀기로 중간고사를 대체하지 않는다고 했다. 석고 틀에서 떼어낸 컵이 동일한 모양으로 책상 중앙에 나란히 놓였다. 1학년 애들이 둘러앉아 한쪽에선 컵을 반대쪽에선 손잡이를 떼어냈다. “우리 가내수공업하는 거 같...
이건 도대체, 도대체 뭐야 얘? 깜빡깜빡. 지금 내가 보고 있는 숫자가… 오후 2시 11분. 부재중 전화 2통. 심장이 철렁 내려 앉았다. 깊은 잠속에서 한순간에 헤어나오게 하는 번쩍임은 대개 불안감을 동반한다. 핸드폰을 찾았고 시간을 확인한 뒤 머리를 감싸 쥐었다. 미쳤다. 알람은, 알람을 안 맞춰놨어. 자책도 잠시 침대 맡에 엎드려 자는 사람이 카게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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