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로오 테츠로는 살면서 단 한 번도 본인을 겁쟁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스물 아홉 살의 여름, 푹푹 찌는 더위 속에서 그는 문득 깨달았다. “내가 갈게.” “너에게로” 여름을 몰고 오는 것 쿠로오 테츠로 X 츠키시마 케이 W. 썸머 인연의 지속이 참 웃겼다. 고작 고등학교 부활동이다. 고작 부활동이라고 츠키시마 케이가 말했었다. 장마가 끝났다. 비는 좋아하...
학교까지 걸어 올라가는 길은 의외의 경사가 심하다. 가운데엔 이차 선의 좁은 도로가 있고 양쪽엔 온통 가게들. 보통 간단한 식사를 위한 작은 식당이고 나머진 죄다 카페뿐이다. 도대체 이 학교 학생들은 밥은 어디서 먹는 거지. 처음 이 길을 올라오며 가졌던 의문은 전공 수업이 끝나고 삼삼오오 모여 학생식당으로 향하는 동기들 틈바구니에서 깨달았다. 우리 학교 ...
“밖에서 기다리지 말라니까.” 무릎에 파묻혀있던 고개가 들렸다. 츠키시마는 저 멀리서부터 쿠로오의 발걸음 소리를 눈치챘으나 부러 모른 체했다. 노을을 등지고 선 그가 그늘을 몰고 왔다. 눈을 감고 있어도 어둠이 짙어졌다. 천천히 들린 고개 속 눈동자가 오롯이 쿠로오를 향했다. 손길이 머리를 쓰다듬을 것이다. 츠키시마는 고개를 빼꼼히 내밀었다. 쓰다듬어 줘....
날이 예상보다 더웠다. 긴 비행이었다. 멜버른의 툴라마린 공항은 작았다. 캐리어는 컸다. 설렘도 기대감도 없는 출발이었다. 입고 있던 후드 집업을 벗었다. 온통 외국인이었다. 집중해 듣지 않으면 이해 못 할 말들이 사방에서 넘실거렸다. 중심가로 향하는 버스를 타기 전 보인 것은 나름 유명한 통신사였다. 줄은 짧지 않았지만 그저 기다리기로 했다. 가진 것이 ...
“안전벨트 맸어?” “응” “차 안에서 핸드폰 보면 눈 더 나빠진다.” “응” 화면을 바라보는 얼굴은 들리지 않았다. 형이 웃더니 볼을 잡아 왔다. 아아, 아파! 지금 나 이거 보고 있잖아! 한창 재생되고 있는 영상에 끝까지 시선을 두었다. 아키테루가 심술과 함께 볼을 더 세게 눌렀다. “형 말 안 듣지?” 차가 부드럽게 출발했다. 조수석에 앉은 엄마가 뒤...
“케이 일어나. 언제까지 자고 있을 거야?” 머리를 쓰다듬는 손길이 내려와 볼을 만지작거렸다. 으응, 더 잘래. 이불을 좀 더 끌어모으며 츠키시마의 얼굴이 이불 속으로 사라졌다. 안 일어나? 형의 목소리가 다시금 울렸다. 이불 바깥으로 만져대는 손길이 간지러워 그가 으하하, 하지 마. 졸음을 떼어내며 웃었다. “자꾸 이러면 늦어져.” 이불을 걷어낸 형이 짐...
“어, 뭐야?” 의아함을 뱉어내며 남자가 츠키시마를 진득하니 쳐다보았다. 사사키씨는? 카운터를 위로 들어 올리며 나온 남자가 그 뒤 누군가 따라오기라도 하듯 문 너머를 힐끔거렸다. 또다시 들린 카운터 남자와 츠키시마 사이에 커다란 선이 그어졌다. “둘이 시간 바꿨어?” 별 신경 쓰지 않았던 짧은 어투가 드디어 제대로 들렸다. 저보다 어리게 생긴 남자는 처음...
평소보다 취기가 단연 올랐다. 주량껏 마시지도 않았건만 고작해야 맥주 몇 병. 어, 아닌가. 츠키시마는 나뒹구는 빈 술병의 개수를 세려다 포기했다. 지금 쥐고 있는 게 맥주병이었던가. 더는 나오지 않는 술에 병 주둥이 속을 가만 들여다보아도 보이는 것은 짙은 갈색 혹은 검은색. 벽에 기대앉았던 몸이 힘이 풀리며 그의 상체가 점점 미끄러져 내려갔다. 힘 풀린...
“야!!! 저리 안 꺼져?!!” “카게야마다!” 나는 주먹을 말아쥐고 도망가는 아이를 쫓았다. 원장실에 불려가 한시간동안 설교를 듣고 왔다는 사실도 잊고 퓨즈가 나간 것처럼 톡 이성이 끊기기 직전이었다. “내가 쟤 건드리지 말랬지!!” 이번에야 말로 가만두지 않을테다. 끝까지 쫓으려 달려나가는 발걸음은 토비오, 녀석의 목소리에 잠시 주춤했다. “일으켜 줘...
“그런 말…들으면 오해해요.” 좋아해 “오해하니까 그런 거” 네가 좋아 “…함부로 말하지 마세요.” “…응, 미안” 나는 웃으며 너를 따라 집으로 들어갔다. 온몸이 후끈거릴 만큼 열이 올랐는데 속은 헛구역질이 나올 것만 같았다. 나는 울 수 없어 웃었다. 발간 눈가를 문지르며 무너지는 마음을 다잡았다. 그건 아마도 사랑 쿠로오 테츠로 X 츠키시마 케이 w....
“좋아해” 이것은 너를 향한 닿지 않는 나의 외침이다. “츳키 좋아해.” 나는 한 번도 너에게 거짓을 고한 적이 없다. 어찌하여 너를 떠올릴 때마다 터질 듯 부푸는 마음을 표현할 문장이 이토록 단조로운가. 네가 내 안에 들어와 이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기를 바란 수많은 날이 지나고 너에게 내가 닿을 수 없음을 느꼈을 때, 나는 차마 너를 미워할 수 없어 감...
합격 통보는 무엇이든 상관없이 그 사실만으로도 행복하게 해준다. 두 번은 하고 싶지 않은 대입고사를 무사히 치르고 나는 정말로 도쿄에 가게 되었다. 졸업식을 위해 강당으로 걸어가며 둘러보는 학교가 낯설다. 계단을 내려가는 복도 한 면을 차지하고 있는 거울로 바라본 나는 고등학교의 끝자락에 서 있다. 이제 다시는 이 교복을 입을 일이 없을 것이다. 계단을 천...
자유로운 창작이 가능한 기본 포스트
소장본, 굿즈 등 실물 상품을 판매하는 스토어
정기 후원을 시작하시겠습니까?
설정한 기간의 데이터를 파일로 다운로드합니다. 보고서 파일 생성에는 최대 3분이 소요됩니다.
포인트 자동 충전을 해지합니다. 해지하지 않고도 ‘자동 충전 설정 변경하기' 버튼을 눌러 포인트 자동 충전 설정을 변경할 수 있어요. 설정을 변경하고 편리한 자동 충전을 계속 이용해보세요.
중복으로 선택할 수 있어요.